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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소통

황석영, 왜 당신인가? - 서프 안호용님

황석영, 왜 당신인가?
(서프라이즈 / 안호용 / 2009-05-15)


황석영이 누구인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민족문학의 거봉이며 실천하는 문화예술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객지, 삼포 가는 길, 한씨 연대기, 장길산, 무기의 그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오래된 정원, 월남 파병, 월북, 망명, 국가보안법으로 수감 등등이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 진중한 단어들이다. 성공한 소설가였고, 시대의 아픔을 몸소 체험한 너무나 현실 참여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존재는 이미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책임을 가진 공인이 된 게 이미 오래 전인지 모른다.

조세희의 눈물을 황석영은 어떻게 보았을까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가 용산 참사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하는 것을 우리는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에 무참히 쓰러져간 소외된 자들의 주검 앞에 그는 진정으로 아픔을 같이 했으며 그 공권력을 규탄했었다. 소설가로서,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한계에 박탈감과 열패감도 들었을 것이다. 조세희의 눈물 앞에 고개를 숙여야할 지식인들이 이 나라에 얼마나 있겠는가. 행동하는 작가 황석영은 그 눈물을 어떻게 보았을까. 

이번 주 황석영이 MB팀에 정식으로 입단식을 가졌다고 한다. 연봉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실한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구단주인 이명박이 직접 스카웃을 명하였다고 한다. 물론 황석영은 특유의 명쾌함으로 쌍수를 들고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욕먹을 각오는 되어 있다고 하니 단단히 변절하기로 마음을 먹긴 먹은 것 같다. 누구 말마따나 사상 전환일까. 당위성을 찾으려고 해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이해가 안 간다는 뜻이다. 자신은 정치적으로 중도이며, 중도 실용파인 이명박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파했다. 소설가의 당위성치곤 너무나 어설프다. 그런 어설픔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변절의 역사를 보아왔다. 멀게는 3.1운동 33인 민족대표의 90%가 훼절한 것을 보았고, 가깝게는 민주화운동을 하던 김문수, 이재오 등이 있었고, 근자에는 뉴라이트 쪽에 386세대 중 변절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변절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한 자구책의 산물이다. 사상의 전환은 미명에 불과하다. 이념이란 관념의 변질에 대해 그들은 명쾌하게 변명을 하지 못한다. 그냥 사상이 어느 날 바뀌었다는 것이다. 배신에는 진정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문수보다 김용갑이 더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배신은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고 번식한다.

아마도 황석영의 변절은 그들과는 달리 권태로움에서 오는 치기인지 모른다. 자신이 이룬 문학적 성과와 행동하는 진보 지식인으로서의 생활이 지겨워서 무언가 획기적으로 변화를 가지겠다는 그만의 충동성의 발로인지 모른다. 문학도 지겹고, 진보도 지겹고, 사는 것도 지겹다. 무언가 새로운 인생을 즐기고 싶다. 세상을 놀라가게 할 일은 무엇인가. 그래 변절이다. 세상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천하의 황석영이 보수라니 거 참 얼마나 재미난 사건인가. 우리는 이런 현상을 신경정신과적으로 노망이라고 한다. 알고 보면 그는 파란만장함을 즐기는 기인인지 모른다.

천하의 황석영이 보수라니 얼마나 재미난 사건인가

황석영은 이명박 품으로 안기면서 이런 저런 이유를 많이 늘어놓았다. 나는 그 구구절절한 변명에 대해 하나하나 따지지는 않겠다. 다만 나를 버리고 가신 당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수많은 독자와 당신의 행보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현재 변절한 당신에 대해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당신의 과거는 당신만의 숨결이 아니다. 당신의 그 숨결은 이미 당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의 숨결을 느끼며 감동과 교감을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 숨결을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바란다.

욕먹을 각오는 되어 있다고 했는데, 그럼 욕만 먹으면 면죄부를 받는 것인가. 이문열의 책 반환 사태처럼 당신의 책이 불태워지고 반환되는 상황을 달게 받는 정도로 문제는 간단치 않다. 그래, 역설적이게도 더 악랄해지는 것이다. 김문수, 이재오와 386 사상전환자들 보다도 더 지독스럽게 변절하여 한 때 당신을 흠모했던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당신의 존재가 확실해지니까 말이다. 이명박의 정신적 지주가 되든지, 당신의 뛰어난 상상력을 이명박에게 심어주든지, 아니면 나팔수를 하든지 노골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기 바란다. 뒤에 숨어 비겁하게 속닥거리지 말고 떳떳하게 앞에 나와 괴벨스가 되어야만 당신을 속이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악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니까 말이다.  

당신은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지만 그래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게 사실이다. 왜 66살의 늦은 나이에 다른 길을 택했는지 그 속 깊은 이유를 모르겠다. 그토록 당신을 애타게 유혹한 것이 무엇이었나. 사유적인 현상을 떠나서 감성적으로 볼 때 그 선택이 진정 당신이 가야할 길인지 난 지금도 모르겠다. 왜... 왜인가?

하여튼, 만년의 노회한 당신의 모습은 왠지 연민이 일고 쓸쓸해 보인다. 대척점에 서 있던 이문열과도 어깨동무를 해야 할 판국이니 이 또한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명박 옆에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이 왠지 낯설고 서글퍼지는 것은 왜일까. 아직도 나에게 미련이 남아 있는가. 애증의 교차인가.

그래, 한때 내 청춘에 문학적 열정을 가슴 벅차게 달구어 주었던 ‘객지’를 이제 저 험한 세상으로 던져버릴 때가 온 것 같다.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