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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소통

이근안 씨, 목사 하지 마세요 - (블로그 '오래된 정원' / 스위치히터 / 2008-11-02)

이근안 씨, 언론을 통해서 목사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과거를 뉘우치고 종교에 귀의해 새 삶을 살겠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요. 사람이 변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인데 오히려 대단한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목사가 된 당신을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 건 왜일까요. 축하는커녕 어제, 그리고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목사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조건 반사처럼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좋은 시대에 태어나 고문이 뭔지 모르는 저도 극 중 신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더군요. 하물며 고문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싶습니다. 신애가 자식을 잃고 그 실존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을 때 자식을 죽인 놈은 하나님께 용서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니… 신애는 이렇게 울부짖었지요.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그를 용서할 수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왜? 왜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에게 용서를 받는 것은 맨 나중 일이라고. 정작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에게는 용서를 빌지 않는 죄 사함과 구원은 싸구려일 뿐이라고.

한국 교회가 파는 싸구려 구원은 진짜 구원이 아닙니다. 물론 이근안 씨의 마음은 진심일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저지른 범죄 때문에 그 사람을 영원히 범법자로 규정하고 사회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근안 씨도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고문이라는, 인간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악마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없었겠지요.

하지만, 과거가 과거일 뿐일 수 없는 게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아직도 당신의 과거 때문에 고통받고 있고, 당신에게 그런 악마의 역할을 강요한 국가보안법도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근안 씨의 신앙과 삶이 아무리 진실하다고 해도 그 진정성이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전국의 교회를 돌면서 당신의 신앙을 교인들과 나누고 교정시설에서 제소자들을 만나는 일을 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근데 그거 하지 마십시오. 이근안 씨가 목사로서 교인들 앞에 서는 것은 처절하게 반성해야 할 당신의 과거를 '종교 상품'으로 만들어서 팔아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런 활동을 하면서 언론에 오르내리고 사람들 앞에 선다는 사실 자체가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두 번 고문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근안 씨가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길 원한다면 사람들 앞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조용히 이 땅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아무도 모르게 섬기는 것이 당신의 진정성을 보이는 길이 아닐까요. 예수의 가르침대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는 그런 삶 말입니다.

그리고 일부 천박한 한국 교회는 당신을 '예수 믿고 새사람 된 모범 사례'로 널리 선전하려고 할 게 틀림없습니다. 목사가 되기 전부터 이미 많은 교회를 돌아다니긴 했더군요. 앞으로는 더 많은 교회에서 당신을 초청하려고 안달일 겁니다. 그리고 교회를 많이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사례비'도 많이 받을 거고요. 그리면 좀 어려웠던 가정 형편도 나아질 수 있을 거고.

하지만, 저는 당신이 그런 요청을 뿌리쳤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례비에 취해 목사라기보다는 교인들 앞에서 연예인 노릇 하는 사람들 여럿 봤거든요. 정말 이근안 씨가 새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탁하나만 할게요. 이근안 씨가 선행을 한다느니, 어떤 설교를 했다느니, 그런 종류의 일들로 당신의 이름이 더 이상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