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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소통

송건호 선생님, 지금 쥐구멍을 찾고 있습니다. - 이기명 선생님

 

송건호 선생님, 지금 쥐구멍을 찾고 있습니다.
 - 추악한 정권과 더러운 언론의 뜨거운 포옹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8-12-14)



자네도 송건호 선생님을 잘 알지. 직접 모시지는 않았어도 언론에 잠시라도 몸담은 사람이면 아는 것이 당연하지. 더구나 자넨 선생님이 칭찬하던 촉망받는 기자가 아니었나. 선생님이 인정을 했다면 그것만으로 자네는 좋은 기자로서 자격이 있네.

자네보다 난 좀 특별한 인연이라고 할까. 고등학교 동문이고 직접 가르침을 받은 고교 은사에다 딸 아이 주례까지 서 주셨고 진흙탕을 헤매고 있는 오늘의 언론현실에서 늘 회초리를 들고 곁에 계시니 항상 송구하고 죄스럽고 부끄럽기 그지없네.

고등학교 때 새로 부임한 20대 선생님이 계셨네. 그때는 공민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사회과목이라고 하던가. 얼굴이 희고 가냘프신 분인데 우리 학교가 모교이고 서울법대 출신이라고 했네.

그때가 이승만 독재시대가 아닌가. 선생님 말씀이 여간 맵지 않으셨네. 약간 느린 충청도 말씨와 반듯한 자세는 곧은 대나무를 연상시켰고 우리는 늘 특별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네. 그때 강의를 들은 놈들 중엔 언론에서 이름 좀 알려진 작자들도 있지.

선생님은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네. "독재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우리 국민은 독재자를 무척 증오했고 그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믿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선생님 얼굴과 말씀이 떠오르네.

선생님의 지난 얘길 누가 모르겠나.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그저 죄스럽다는 것뿐이네. 얼굴 들기 부끄럽지.

12월 11일 제7회 청암 송건호 언론상 시상식이 있었네.

YTN 노동조합과 MBC 'PD수첩'이 공동 수상을 했지. YTN 노조는 우리 언론사에서 이름을 지워야 할 구본홍의 낙하산 사장 임명을 반대해 언론의 독립이라는 절대가치를 지키는 언론인의 치열한 정신을 보여주었네. 실종된 기자정신과 시대정신의 부활이네. 이 나라 언론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네.

MBC의 PD수첩도 황우석 사태와 광우병 관련 한·미 쇠고기 협상 등 국가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모두가 기피하는 예민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권력에 굴하지 않는 언론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보여줬지.

축하의 시상식 자리에서 가슴은 무거웠네. 시상식을 찾은 전직 언론인들은 거의가 독재 시절 언론자유를 위해 처절한 싸움을 한 사람들이네. 이제 나이 먹어 늙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지고 구호를 외치던 목소리에 힘이 빠졌네. 선생님과 함께 일하던 조중동 언론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군. 당연하지.

적당히 허리 굽혀 눈 질끈 감고 글재주나 부리며 권력자들 비위 맞추면 벼슬하고 돈 잘 벌고 자식들 호강시키며 살 수 있을 텐데 그 놈의 언론이 뭐기에 처자식 고생시키며 평생을 마누라 눈치 보고 살았단 말인가.

지조가 밥 먹여주고 민주언론이 인생 대신 살아 주는 거 아니지. 대의와 명분은 깔아뭉개고 더러운 권력의 시녀가 된 언론인들이 호의호식하고 그들을 부러워하며 입맛 다시는 인간들은 쌔고 쌨지. 곧은 언론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밟아버린 구본홍 이병순을 닮고 싶은 언론인은 얼마나 많을까. 난 알고 있네.

자네가 몸담았고 함께 신문을 만들던 후배들이 시쳇말로 잘 나가고 있네. 뒤에서 무슨 욕을 하든 아무 상관이 없네. 그냥 좋기만 하고 입이 벌어지네. 그들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그냥 지나간 시간이고 호강하고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 세월이네.

송건호 선생님의 평전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싶다』에는 이런 내용이 있네.

"<동아일보>를 떠날 때 송건호는 부인 이정순에게 이런 말도 했다. "기자들이 옳고 나는 기자들 편을 들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역사가 그것을 증명할 것이다." 그는 88년 언론운동 동지들과 함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신문'을 기치로 삼은 <한겨레신문>을 창간하며 초대 사장을 맡아 스스로 그 말을 증명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인 큰아들을 비롯해 6명의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던 그의 <동아일보> 퇴직 후 생활은 참담했다. "장차 생활대책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때면 나는 미친 듯이 서오릉 쪽으로 달려갔다. 숨이 차 헉헉하면서도 두려움은 떠나지 않았다."

끝없이 미행과 도청을 당하고 청와대 허락 없이는 일자리마저 얻을 수 없는 세월. 권력은 각료 자리를 주겠다며 유혹했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항상 30년, 40년 후에 과연 이 글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라는 생각과 먼 훗날 욕을 먹지 않는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크게는 이 민족을 위해 작게는 내 자식들을 위해 어찌 더러운 이름을 남길 수야 있겠나 라는 점을 생각해본다."

선생님은 전두환 독재가 자행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얻은 파킨슨씨병으로 말 못 할 고통을 겪으셨네. 언제인가 어느 행사에서 선생님을 뵈었는데 후배며 제자인 날 못 알아보시고 누구 시드라 하시기에 속으로 병이 깊으시다는 알고 가슴이 아팠네. 그리고 돌아가셨지. 독재가 선생님을 타고난 천명대로 사시도록 놔두지 않았네.

청암 송건호 언론상으로 선생님은 우리 곁에 계시네. 권력 곁에서 침을 흘리고 있는 불의한 후배들을 꾸짖으시네. 그리고 살아 제 몫을 못하는 후배들을 가엾게 보고 계시네. 그러나 어쩌겠나. 생목숨 끊을 수도 없고.

시상식이 있은 그날 밤. MBC에서는 손석희 교수의 백분토론이 있었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재벌과 조중동이 방송을 먹느냐'는 문제를 다루는 토론이지. 정병국이란 한나라당 의원, 도무지 자질이 안 됐더군. 남 진지하게 말하는데 왜 실실 웃나. 듣기 거북하면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속 뻔히 드려다 보이는 들러리 비슷한 사람들도 딱하기는 마찬가지고.

문제는 상식이네.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는 말을 태연히 하면서도 표정은 왜 그리 엄숙한지. 대학교수들 참 장하고 대견하더군. 드라마에 교수 역 나가면 연기대상 타겠어.

상식이 뭔가.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편적 가치판단의 기준'이 아니겠나. 물론 그들이 보통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들이기에 상식을 비상식으로 판단하는지는 몰라도 그날 얼굴에 분장만 한 게 아니라 상식에도 분장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이 말했네. 재벌에게 방송을 몽땅 허용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고. 조중동도 마찬가지라고 했네. 삼성의 이건희 사건 때 중앙일보가 뭘 어떻게 공정하게 보도했나.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참 잘도 공정하게 보도하더군. 한마디만 하지. "검은 눈물 닦고 다시 웃다." 이거 어느 기자가 썼는지 얼굴에다 시커먼 기름 좀 발라줄까. 웃나 보게.

조선일보 동아일보라고 뭐가 다를까. 정병국 최홍재 황근 등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잘도 말을 하대만 그러면 못 쓰네. 경쟁을 해야만 좋은 보도를 한다는 거야. 코웃음 소리 안 들리나. 경쟁적으로 못된 보도를 한다면 맞는다고 할 것일세.

모두 좋은 교육 받고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왜 이 모양인가. 차라리 솔직하게 이런저런 문제는 있지만 잘해 보겠다고 하면 솔직하다고 사람대접 받을 것이 아닌가.

재벌이 경제발전에 공헌한 것은 일정부분 인정해야지. 그러나 방송소유가 언론발전에는 어떤 도움이 되겠나. 삼성 현대 SK LG 등 재벌이 자기회사의 오너나 비리를 고발하겠나.

조중동도 지들이 하면 뭐든지 된다는 오만은 버려야 되네. 지금 세상이 지들 생각대로 돌아간다고 믿나. 아니네. 착각이지. 착각이 깨지는 날 처참해 질 것일세.

"썩은 언론과 언론인은 불의한 권력을 지지한다." 어느 언론학자가 한 말이네. 바꿔 말하면 "불의한 권력은 썩은 언론과 언론인과 한통속"이라는 말과 같지. 자세히 살펴보게. 그런 언론사와 언론인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입 밖에 내기도 싫지만 끔찍한 소리를 들었네. 언론장악은 한나라당의 영구집권 시나리오의 일환이라네. 신문과 방송 인터넷 모두 장악하면 국민의 여론쯤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거야.

사이버 모욕죄까지 만들어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이 가능하다면 어느 간 큰 인간이 인터넷에다 글 올리겠나. 우리 국민들 멀쩡하게 앉아서 완전히 빙신 되는 것이네. YTN은 승인 재심사보류라고 하던가. 겁주네. 참으로 잘하는 짓이네.

요즘 신문이나 방송보도를 보면 참으로 가관이더군. 꼴불견이야. 그래도 창피한 건 아는지 후배 놈 만나면 '중간에 끼어 죽겠습니다' 엄살을 부려요. 자기 뜻대로 기사 쓰는 거 아니라는 변명인데 눈을 맞추지 못하네.

언론사 간부들에게 왜 보도를 안 하느냐고 물으면 했다는 거야. 언제 했느냐고 물으면 내가 못 봤다네. 찾아보면 있다는데 환장하지 않겠나. 완전히 양심이 석탄이네.

연합뉴스가 제 몫(?)을 단단히 하는 모양이야. 네티즌의 글이네.

"배추 500포기 사용처가 뉴스거리인가", "푼돈 기부해서 칭찬받고 법으로는 사회 복지 후퇴시키고." "약속한 재산 헌납 안 하는 건 왜 입 다물어." 등등.
 
연합뉴스가 기분 나쁘겠지. 이유야 생각해 보면 알겠지. 국민들이 연합뉴스의 딱한 입장을 어디 알 수 있는가. 벙어리 냉가슴이네. 뉴스진흥회 이사장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가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언론이 가야 할 길은 가는 척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나.

KBS야 관심도 없지만 MBC '9시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이 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하네.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한 때 뉴스 하면 MBC라고 했는데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면 경영진들과 보도국 간부들이 속 편하게 살려고 작심을 한 것 같네. 잘 생각했지. 언제 그들에게 의식 있었나. 신경민 앵커가 클로징 멘트와 관련, 입장이 거북하다던가.

이방원의 <하여가>로 그들을 격려해 줄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그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같이 누리리라.

그러나 백 년까지 누릴지 하늘이나 알지 누가 알겠나.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네. 세상이 또 바뀐다면 지금 이른바 반민주언론인으로 규탄받는 자들은 재빠르게 변신해서 잘 먹고 잘 살 것일세. 왜냐면 그들은 카멜레온의 변신과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 왜 내가 이런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가. 나이 먹어 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손주 녀석 재롱이나 보면서 편히 살다가 죽으면 누가 때려죽이나.

글의 온도를 낮추라는 이런저런 충고도 들려오는데 기운 떨어졌다는 핑계로 절필 선언하면 되는 거 아닌가. 글 안 쓴다고 서러워할 사람도 없고 야당이라는 인간들 하는 꼬락서니 보면 세상 바뀌기도 틀리고 바뀌어 봤자 별수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정병국이 백분토론 하는 걸 보면 울화가 치밀어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참담한 심정에다 더러운 팔자라고 생각하네.

4.19는 그냥 데모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인간들도 나오는 세상이네. 그들 말대로 데모하던 그날 당시 을지로 입구 치안국 앞에서 경찰이 쏜 총이라도 맞아 죽었으면 이런저런 더러운 꼴 안 보았을 텐데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해 보네. 이기택이는 늘 4.19 혁명의 주역이라고 콧등에 걸고 다녔는데 요즘 평통부의장 일 바빠서 까맣게 잊었나. 아니면 입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인생철학을 터득했나. 어쨌거나 인생 말년이 불쌍하게 됐네. 4.19혁명의 주역이라더니 그래서 인간은 관 뚜껑에 못질해야 끝나는 거라네.

혹시 자네도 내가 MB정부 망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네.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MB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 나라고 국민이네. MB가 잘 해야 나라가 잘 되고 국민이 행복하지 않겠나. 내 손주를 두고 맹세하네.

MB 정부에게 부탁하네. 아니 MB에게 간절히 청하네. 정치도 상식대로 하면 그게 잘 하는 정치가 아니겠나. 청와대 직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 100명만 풀어서 택시 타고 다니며 1시간만 기사하고 얘기해 보면 알게 되네. 택시는 움직이는 여론이 아닌가.

언론을 장악하려는 생각 버려야 하네. 규탄받는 사람들 갈아야 하네. 열 명 중에 여덟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네. 밀어붙이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지. 잠시 동안은 되는 것 같지만 국민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네. 촛불 꺼졌다고 생각하면 안 되네. 꼭 눈에 보이면서 타오르는 것만 촛불인가. 국민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촛불을 봐야지.

12월 17일 저녁 7시 프레스센터에서는 YTN 노조를 돕기 위한 후원회 행사가 열리네. 언론관련 후원행사에 가보면 늘 오는 얼굴들만 보이지. 동아투위를 비롯한 해직언론인들이네. 반갑기 그지없지만, 이번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네.

지난해 조선일보 불법판촉을 공정위에 신고해서 거금을 포상받았네. 포상금은 민언련을 비롯한 시민언론운동 단체에 기부했지. 특별한 포상으로 생긴 돈이어서 특히 기분이 좋았네.

얼마 전에 서강대학보사에서 원고청탁을 받고 ‘미국의 오바마. 한국의 이명박’이란 칼럼을 썼는데 원고료를 받았네. 생각지도 않은 원고청탁과 원고료인데 YTN을 위해서 보람있게 쓰라는 송건호 선생님의 뜻인 것 같네.

서강대는 신방과가 쌨지. 지금도 서강대 출신 언론인의 활동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활발하더군. 고명하신 유재천 현 KBS 이사장께서 신방과 교수로 재직하시던 학교네. 이 학교 신문사에서 받은 원고료를 민주언론을 위해 쓰게 됐으니 기분이 좋네. 행사장이 꽉 미어터졌으면 좋겠네.

벌써 새벽이군. 다시 송건호 선생님께 사죄를 드리네.

"선생님. 쥐구멍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은 반드시 옵니다.

ⓒ 이기명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