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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소통

일제고사, 부당하다! - 가을들녘

일제고사, 부당하다!
(서프라이즈 / 가을들녘 / 2008-12-19)


"교사 일곱 명 파면/해임" 오마이뉴스에 줄줄이 올라온 기사를 읽고 너무 황당하고 서글퍼졌다. 도대체 뭐 이따위 나라가 있단 말인가. 난 도무지 이놈의 '일제고사'가 왜 필요한지 백번을 양보해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간다. 누가 좀 알려달라. 도대체 일제고사가 왜 필요한가?



1. 교육행정에 쓰일 자료 축적을 위하여?

내가 알기로, 교육부에서는 그동안 매년 '학업성취도 평가'란 이름으로 학생들의 성별, 지역별 등등 인구통계학적 요인들에 따른 차이를 다 계산해왔다.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다 보는 방식이 아니라 '표집(샘플링Sampling)'해서 말이다. 근데, 명박이 집권하고부터는 전수조사(센서스census)방식으로 한단다. 그래서 표집이 아니라 일제히 다 본다고 해서 일제고사.

도대체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참여정부 시절 학업성취도 평가 브리핑한 것 보니, 내가 보기에 교육행정전문가에게 필요한 정보들은 다 있던데, 도대체 뭐가 알고 싶어서? 예를 들어, 서울 애들이 시골 애들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 영어특성화교육을 실시한 학교의 영어점수가 그렇지 않았던 학교보다 좋더라, 수학점수가 5년째 떨어지고 있으니 수학교육을 더 강화해야겠다…. 이 정도 알면 되는 것 아닌가? 전수조사 방식으로 하면 물론 훨씬 더 많은 쓰잘데기 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맞다. 예를 들면 이런 정보.

"종로구 안에서 영어점수 좋은 학교 순서"
"아버지가 의사인 애들과 아버지가 농부인 애들 사이의 수학점수 비교(불가능할 것 같은가? 돈, 슈퍼컴퓨터, 데이터 입력 요원 30명만 붙여주면 닷새 안에 해준다.)"
"땡박초등학교 5학년 1반부터 8반까지 반별 순위"
"땡박초등학교 5학년 4반 김철수의 전국순위"
"전국 1등~3,000등까지의 학생들 이름, 집 전화번호, 주소, 본적"

이런 자료들은 '표집'해서는 통계적으로 '서로 확실히 차이 난다'라고 말하기가 어렵지만, 전수조사 하면 거의 99%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런 자료가 도대체 왜 필요한 거지? 어따 쓸려구? 혹시 전국 순위 낸 거 가지고 국제중 입학사정자료에 쓸려고? 설마…? 정말?

이놈의 일제고사에 대해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개개 학생의 능력에 대한 국가 차원에서의 수준'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떠들어댔다. 그게 왜 중요하지? 아니, 우리 아이가 전국에서 376,981등이란 걸 내가 왜 알아야 하지? 내 새끼는 내게 언제나 1등인 귀한 아들이고, 사랑이 변하듯이, 공부 못하지만 착한 내 아들도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어서 갑자기 반에서 30등 하다가 15등 할 날이 올 것만 같은데, 초등학교 6학년짜리 아들에게 "넌 전국 376,981등이야"라고 하는 걸 왜 국가에서 그렇게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거지? 내가 왜 동네 슈퍼에 마실 가서, 내 이웃 개똥이 엄마가 지껄이는 '아휴~ 우리 딸내미한테 들으니까 갑돌이가 이번에 376,981등 했다면서요? 우리 딸내미는 이번에 1,781등 했어요. 서울대 가고도 남을 등수라나~"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지?

어차피 고2~고3 되면 다 대략 알 수 있는 전국 등수를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애들한테 알려주려고 이놈의 정부는 생난리를 치고 있는 거지? 어디 한번 교육부 관계자한테 한번 물어보자. 넌 니 나이 동년배들 중에 몇 등이야? 그 등수가 그렇게 알고 싶어? 너도 자기계발 하려면 그 정도 등수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


2. 교사 평가 자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이것도 내가 보기엔 영 아니올시다~이다. 왜냐... 시험을 누가 보지? 학생들이 본다. 학생들이 본 자료를 가지고 교사를 평가해? 자, 예를 들어 독평하고 나하고 둘 다 교사인데, 독평은 서울 강남의 모 중학교 이사장에게 1억을 갖다바치고 교사가 되었고, 가난한 나는 섬마을 선생님이라고 하자. 독평이는 수업 준비도 개판으로 하고 맨날 교장/교감한테 잘 보일 궁리만 하는데, 나야 뭐 섬마을에서 할 게 없으니 퇴근하면 하는 일이 교육자료 만들고... 그런 거 한다고 하자. 강남 애들이 섬마을 애들보다 평균적으로 성적이 높겠지? 물론 우리 섬마을 애들이 훨씬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할뿐더러, '앞으로 더 나아질 잠재력'을 갖고 있겠지만, 일제고사 결과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을 거다. 독평이가 가르친 애들이 더 좋은 점수를 받으면 독평이 좋은 교사일까? 예가 극단적이라고?

자, 그럼 독평이랑 나랑 같은 서울 강남의 교사라고 치자. 독평이는 일제고사 보름 전부터 애들한테 '모의 일제고사 문제집' 다 사오라고 해서 2주 동안 애들 문제 푸는 훈련을 시킨다. 나는 시간표 다 지켜서 국어 시간에 국어하고 체육 시간에 체육하고 음악 시간에 음악 했다. 시험결과? 독평이네 반이 나보다 평균 5점이 더 좋았다. 그럼 독평이는 나보다 대략 5% 더 좋은 교사인가?

독평이와 나의 실력을 알고 싶으면 독평이하고 나하고 둘이 앉혀놓고 우리 둘이 시험 보면 된다. 근데, 실제 지금 그렇게 하고 있잖아? 교사들 수시로 평가당하고 있잖아? 교사들이 '평가당하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일제고사라는 손쉬운 방법을 꺼내 드는 게 옳은 것인가? 이건 좀 아니지 않아?


3. 공교육 강화를 위하여?

이건 뭐 더 말할 가치도 없다. 공교육이 강화된다...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걸까? 대한민국이 과외공화국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 공교육 강화 쉽다. 과외금지 시켜버리면 된다. 공교육 아닌 모든 사교육을 금지 시켜버리면 된다. 그런데 그건 할 수도 없고 절대로 해서도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지? 공교육의 테두리 밖에 있는 불필요한 사교육을 무력화시켜 버리면 된다. 그런데 사교육을 무력화시킨다는 게 말이 쉽지 실제로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지금 단계에서 공교육을 단숨에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다.

그러나 차근차근, 장기적으로 공교육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그중 첫 번째가 '더 이상의 경쟁'을 유발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전제는 학생들이 학력수준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초/중/고생들... 엄청 똑똑하다. 전 세계 잘사는 나라 50개국에서 평균수준의 학생들을 뽑아서 한 반을 만든다면, 장담하건대, 우리 아이들이 1~2등을 다툴 것이다(자랑스러운 우리 아들/딸/조카들!!!). 더 이상의 경쟁유발? 불필요하다. 따라서 현재의 경쟁수준을 아주 아주 장기적으로 천천히 완화 시켜나가면서 공교육을 강화시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학 시스템'을 건드려서 고등학생들의 과도한 경쟁을 낮추자고 하는데, 나도 충분히 수긍하는 부분들이 많지만, 그런 건 죄다 심상정류의 뜬구름 잡는 소리 잘하는 애들이 하는 꿈같은 이야기다. 세상이 그리 만만하다면 개혁처럼 쉬운 게 어디 있겠는가?

자, 그럼 일제고사는 경쟁의 촉매제일까, 완화제일까? 두말하면 입 아프다. 혹시 일제고사가 공교육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좀 알려 달라.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무엇이 있을 수도 있으니 얼마든지 토론은 환영한다.

분명히 말해둔다. '학업성취도 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올바른 교육정책수립과 학문적 필요를 위해서라도 '학업성취도 평가'는 하는 게 맞다. 내가 반대하는 핵심적인 요지는 이거다.

그걸 도대체 왜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전수조사'를 해야 하는가? 기존의 샘플링(표집조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표본 수(시험을 치를 학교, 학급, 학생 수)를 늘리고 꼭 필요한 데이터를 얻기 위한 방식으로 보완하는 선에서 해결이 불가능한가? 만약 꼭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그걸 보기 싫다고 하는 학생들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할 건가?

샘플링 대신 전수조사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내용이 무엇인가. 바로 프라이버시와 강제성, 이 두 가지다. 쉽게 말해 '강제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전수조사(census)는 매우 조심스럽게 시행되어야 하며, 그 대상(학생)이 완전하고 자유롭게 참여를 거부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교육의 문제이고 행정의 문제이므로 말 그대로 완전하고 자유로운 수준의 거부권을 주자는 식으로 비약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도 고려하지 않고 일제고사를 밀어붙였다면 그따위 공무원들은 똥물에 처박아 버려야 한다. 아니면 그딴 공무원 놈들은 "공무원들 중에 몇 등"인지를 이름표에 써 붙여서 다니게 해야 한다.

교육부에 고한다!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혹은 너무 과도해서 탈만 불러 일으킬 일제고사를 강행하는 교육부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일제고사 강행은 이명박 정부의 몰락을 불러올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망해도 좋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강행하라. 전국의 모든 초중등학교 선생님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어도 좋다면 얼마든지 한번 해봐라. 그리고 내일부터 '교육부' 딱지 떼고 '선도부'라고 명찰 바꿔 달고!

국민들하고 전쟁을 원하면, 얼마든지 해 드리겠다.
개같이 진흙탕 싸움을 원하면, 얼마든지 굴러 드리겠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죽는 거 마찬가지라면, 우리도 전쟁을 즐길 테니, 니들도 각오 단단히 해라!

ⓒ 가을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