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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소통

미네르바의 1심 무죄 여파 - 서프

미네르바의 1심 무죄 여파
(서프라이즈 / 두 아들 아빠 / 2009-04-21)


김경환 법무부장관은 이 사건이 검찰의 조사 중에 범죄의 여건 구성이 된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는데 참 창피하게 되었다. 스스로 장관직을 내 놓아야 할 정도다. 검찰은 구체적인 수치까지 들이 대며 우리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기소했고 이들의 말을 그대로 나발 분 언론은 더 창피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들이 그리 창피함을 모른다는 일이다.

무료 변론을 맡았던 박찬종씨는 무죄 판결 후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고 놀라 워 했다. 변호사가 변호인에 대해서 자신감도 없이 변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법원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고 변명했는데 법원을 칭찬하는 것인지, 욕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간다. 그만큼 혼돈의 시대가 아닌가 싶다.

민주국가란 개인이라도 국가 기관의 부당함에 대해서 소송으로 시정하게 하고 그로 인해 입은 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다. 이런 점에 이번 판결은 소송이 아니라도 개인이 인터넷 매체를 이용하여 여러 사람에게 알일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피해에 대한 뒤 늦은 구제는 그 한계가 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기능이 열린 일이다.

과거 유능한 문인이라도 하여도 메이저급 언론사에 등단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널리 알릴 기회를 차단해서 계속 글을 쓸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문인이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들은 이를 표현의 자유가 이루어졌다고 싱거운 이유를 대며 대서특필했지만, 솔직히 속내는 그리 좋지 못하다. 과거 우리 사회는 자격이 주어진 자만이 공개적으로 말하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언론이다. 그런데 이제 그 자격 자체가 무시된 일이다.

기성 언론이 훈련을 통해서 자격이 주어졌기에 정제된 표현을 할 수도 있지만,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기도 했다. 언론이 개인의 경제 예측보다 못하다는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과거 우리는 IMF라는 경제 난국을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날벼락처럼 맞았다.

이를 알고 이명박 정권은 인터넷에서 개인의 표현을 어떤 방식이든 제제를 가하려고 하고 있지만 이미 봇물이 터진 것을 뒤늦게 막으려고 한 일이다. 앞서 나간 시대를 뒤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판결은 인터넷의 약진이며, 종이신문과 기성언론에게 큰 경종을 울린 일이다.

법원의 무죄 판결 요지는 먼저, 다음포털의 아고라의 경제 방은 자유롭게 토론하는 곳으로, 글이 과장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서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박 씨가 당시 게시 글의 내용이 허위라는 인식하에서 게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설사 허위 인식이 있었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 할 만 한 증거가 전혀 없다"고 하고 “글로 인해 달러 매수량이 급증하는 등 경제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혀 근거 없는 것을 악의적으로 유포해서 대중들에게 인식시켜 그로인하여 개인이나 집단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은 막아야 하고 제재를 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대상이 국가권력과 기관이라면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법원의 판결 요지에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권력의 힘에 위축되고 억눌리거나, 지배당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를 명시 안한 아쉬움이 있다.

말을 막는 이유는 그 안에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불의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정도 그래왔다. 인격자끼리는 말로 소통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힘이 소통의 도구가 되면 이는 마초사회다.


ⓒ 두 아들 아빠


 

한국의 '플라톤' 꿈꾸 는 <동아>ㆍ<조선>   
 -[김종배의 it] 미네르바 무죄에 대한 그들의 자세

(프레시안 / 김종배 / 2009-04-21)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원이 '미네르바' 박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게 마뜩치 않은 표정이다.

이해할 수 있다. '미네르바'가 '공익을 해할 목적이 없었고, 허위 사실이라고 인식하면서 글을 게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이 최종심이 아니니까 사실을 다툴 여지는 남아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마뜩치 않아 하는 건 범죄구성요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아니다. '미네르바 현상' 그 자체다.

'동아일보'가 그랬다. "1심 무죄 판결은 미네르바 개인의 행위에 대한 법리적 판단일 뿐이지 '미네르바 현상'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박씨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확대 과장 해석하며 미네르바 현상의 사회적 폐해를 시정하려는 노력에 역행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조선일보'가 그랬다. "오프라인과 달리 인터넷은 헛소문이라도 순식간에 전 국민에게 퍼뜨리는 힘이 있다"고 전제한 뒤 "인터넷 유언비어를 걸러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엔 언제 또 제2의 미네르바, 제2의 광우병 사태 같은 수준 이하 일들이 다시 벌어지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그랬다. "수준 이하의 일들" 뿐만 아니라 '수준 이하의 인물' 또한 제기했다. "지식이 얕은 비전문가"(동아일보), "경제학을 전문으로 공부한 적이 없었던 30세의 무직 청년"(조선일보)에 불과한 사람이 유포한 '허위 사실'에 "청와대 경제수석까지 했던 경제학자"마저 놀아나는 "황당한 사태"를 개탄했다.

이건 이해할 수 없다. 인정할 수도 없다. 두 신문이 비판하는 '미네르바 현상'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헌법 원리와 직결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미네르바 현상'에 대한 비판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되기에 그렇다.

따져보면 아주 간단하다. '미네르바'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헌법 원리를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공익을 해할 목적이 없었다면, 허위사실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면 자유로운 표현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기본권 원리를 환기한 것에 불과하다.

이 원리를 적용받는 대상에 '수준 이하의 인물'은 없다. 표현의 자유를 구가하는 주체를 학력이나 전문성이란 잣대로 가를 수가 없다. '수준 이하의 일들' 또한 없다. 그건 '공개시장' 또는 '광장'에서 자율적으로 걸러지는 일일 뿐이며 사필귀정으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우여곡절일 뿐이다.

하지만 두 신문엔 있다. '수준 이상'이 있고 '수준 이하'가 있다. '오프라인의 정론'이 있고 '온라인의 유언비어'가 있으며, 당당히 이름을 밝히는 '전문가'가 있고 익명성에 숨은 '비전문가'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미네르바에 휘둘린 우리 사회의 수준이 더 문제"(조선일보)니까, '우민'이 득시글대는 수준 이하의 사회이니까 이런 구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계도하고 끌어가야 한다.

어떤가? 이렇게 보니 닮아있지 않은가? 소크라테스에 독배를 안긴, 수준 이하의 '우민'을 원망하며 '철인정치'를 희구했던 플라톤의 생각과 맞닿아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