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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소통

죽은 제갈공명(노무현)이 산 중달(검찰)을 잡다 - 서프 펌

죽은 제갈공명(노무현)이 산 중달(검찰)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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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수사결과를 정리해보면 너무나도 명백한 결과가 예상된다.

 "노무현 대통령 포괄적 뇌물죄로 기소 => 증거불충분으로 기각"

  

0. 포괄적뇌물죄(包括的賂物罪).

 구체적인 영향력 행사에 대한 대가뿐만 아니라 기업경영 등과 관련, 포괄적으로 선처해 달라는 취지로 돈을 받은 부분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뇌물죄. 1995년 12월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을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로 기소하면서 처음 적용했다.

 특정 이권과 관련, 영향력을 행사해준 대가로 돈을 받은 공무원에 대해 적용하는 전통적 의미의 뇌물죄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 죄가 처음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것은 주요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특별한 청탁 없이도 받을 수 있는 뇌물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묻고자 도입된 것으로 기억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로 수많은 주요 위치에 있었던 인사 (특히 국회의원들)가 이 죄로 처벌을 받은 바 있다.

 0. 가정에서, 기산에서 중달은 크게 패배했다.   - 검찰과 노무현의 악연. 그리고 악연.

 검찰과 노무현의 악연은 달리 더 말할 것도 없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모든 것이 다 드러났다. 검사들은 대통령을 공격했고, 대통령은 "이쯤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명언을 남기며 검사들을 몰아붙였다. 토론 자체에 나간 것이 검찰의 실수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검사들은 국민들에게, 그리고 실세인 정부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  법무장관에 강금실을 임명하면서, 노무현은 법조계의 관행처럼 굳어졌던 서열을 파괴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모두 노무현의 승리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검찰은 힘이 있었다. 그들은 최소한 노무현에게 협조하지 않음으로서 노무현에게 더 큰 패배를 당하지는 않았다. 중달이 제갈공명에게 수없이 패배하면서도 기산이나 장안과 같은 유리한 고지를 지키거나 되찾았던 것처럼, 그들은 노무현에게 결코 도움이 될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법과 정부의 분립일지도 몰랐다.

 정부가 법무장관을 새로 임명해도 정부의 꼭두각시는 법무장관으로 끝났다. 장관이 대통령과 코드가 맞아도 검찰이나 판사와 같은 법조인들은 결코 노무현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을 제외하고, 대법원 판결 중에 노무현에게 호의적이었던 것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해준다. (수도 이전 위헌, 언론법 개정 일부 위헌, 종합부동산세 일부 위헌, BBK 수사 등등)

  

1. 제갈공명은 죽었고, 촉군은 물러나고 있었다. 그래서 중달은 급히 돌격을 외쳤다.
  - 삽질정부 등장 이후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던 검찰. 그들은 달라졌다.

 하지만 이러한 견제도 참여정부가 끝나면서 마침내 균형이 깨지게 된다. 대통령이 바뀌고, 코드는 모조리 뽑혔다. 그리고 정말 말 그대로 물갈이가 되었다. 마침내 검찰은 그간 참아왔던 자신만의 색깔을 완벽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장안에 틀어박혀 있던, 기산에서 결코 응전하지 않은채 여자옷을 받는 조롱을 받아도 묵묵히 참아왔던 사마중달처럼 때를 기다려 온 검찰은 마침내 검찰 본연이 가진 공권력. 국가가 부여한 힘을 완벽하게 발휘하기 시작한다.

 나는 분명 검찰의 일련의 행동의 배후에 삽질정권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검찰이라는 조직을 완벽하게 조종한다는 것은 무능한 이명박 정권의 능력으로는 분명 무리다. 오히려 행동의 주체는 정말 검찰이었고, 검찰 스스로가 이명박에게 도움이 되는 형태로 움직여왔다고 보는것이 옳다.

 잠시 읽는 분께 질문드린다. TV나 방송 앞에 당당히 나서서 자신의 의견조차 피력하지 못하고, 언제나 대변인의 입을 빌려서만 자신의 말을 전달하는, 혹은 라디오로 대본을 읽기만 하는 대통령이 이정도로 '완벽'하게 검찰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족보만 달달 외워서 답하는 대통령의 능력으로?

 BBK에서부터 광우병 쇠고기로 시작된 수많은 시위, 그리고 과거 정권의 비리 수사 및 용산 수사에 이르기까지. 정말 용의주도할 정도로 검찰은 이명박 정부와의 호흡을 잘 맞췄다. 이러한 '완벽'한 협동은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명박과 같은 무능한 대통령의 지시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작품이다. 생각해보라. 이명박의 리더쉽으로 검찰들이 이정도로 움직여 줄 것 같은가? 그 대한민국 0.1%의 두뇌집단인 검찰이?

 정리하면, 현 삽질정부 등장 이후로 검찰의 강력한 공권력 발휘는 어디까지나 검찰 스스로가, 검찰 자신의 의지로 능력을 발휘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삽질정권이 굳이 검찰에게 사주할 필요도 없었다. 검찰 스스로가 과거에 정부에 의해 강제로 봉인당했던 힘을 풀고,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것이 검찰의 현상황이다. 적어도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아예 검찰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검찰은 이러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읽은 듯, 대통령이 원하는 형태로 수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노무현 정권때는 정부와 검찰이 서로 터치하지 않았던 이유가 서로에게 간섭하면 좋을 것 하나 없다라는 양자간 공동 인식과 견제에 있었다면, 현 삽질정부와 검찰간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 상호간 윈윈이라는 공동 목적을 두고 서로 터치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정말 놀랍게도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아마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서로다른 두 기관이 이정도로 완벽하게 시너지를 내는 것은 아마 최초이자 최후일지도 모른다.

 

 2. 그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적어도 제갈공명의 뒷모습을 보기 전까지.

 삽질정부 이후로 이명박의 방관 하에 검찰은 정말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 자신들의 수사력을 총동원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을 일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모든 공권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PD수첩의 PD들 수사하는 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핸드폰을 내내 꺼놨던 김보슬 PD는 핸드폰의 전원을 켠지 불과 두세시간만에 위치가 파악되었으며, 그날 밤에는 PD를 연행할 정도였다. 과거 참여정부나 국민의정부때였다면 이러한 속도전은 분명 '인권위'나 다른 조직의 반발을 받고 제지를 당할 법도 한데,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다.

 대부분 검찰에 넘어온 수사는 검찰이 의도한대로 흘러갔다. 특히나 신영철 대법관과 같이 법원에도 자신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만큼, 국민들의 반발이나 야당의 반발같은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촛불에서 그들이 기소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검찰이 요구한 만큼 처벌을 받았으며, 현정권이나 자신들과 마찰을 일으켜서 좋을 것이 하나 없을 정도로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수사는 최소한으로 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굴욕의 역사였던 전 참여정부에 대해서는 정말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깊게 파해치기 시작했다.


친노그룹의 대부분의 혐의를 찾아내어 법정에 세우는데 성공했으며, 그들의 최고의 횡재는 '노건평'이라는 고구마 뿌리 하나를 발견해낸 것이다. 노건평은 과거부터 수차례 의혹이 있었지만 대통령의 형이라는 이유만으로 가급적 수사를 기피해왔지만, 정권이 바뀐 현상황에서 더이상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노건평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모든것을 다 털었고, 마침내 그들이 원할 정도의 비리 줄기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박연차'이다.

 노건평에 대한 수많은 비리는 2008년 11월에 본격 수사하여 약 한달뒤인 12월 즈음해서 대부분 증거를 확보할 정도로 빠른 수사력을 보인다. 특히 2009년 들어서 그들은 박연차를 압박하는데 성공해서 과거 경남, 김해일대에서 참여정부를 비롯해서 전 정권 혹은 현정권과 관계없는 비주류 인사들에 대한 비리를 대부분 다 찾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검찰은 그들이 원했던 제갈공명의 시신 - 즉 노무현의 비리 - 을 눈앞에 둘 정도로 쫒아왔다. 박연차로부터 노건호, 연철호, 정상문 등에게 돈을 건냈다는 결정적인 진술을 확보한 것이다. 이때가 바로 2009년 4월 초반. 그들은 이 시점에서 승리를 확신했다. 분명 죽은 제갈공명의 관을 찾아내서 그동안의 원한을 풀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3. 뒤돌아선 제갈공명은 그 모습만으로 중달이 이끄는 위군을 자중지란에 빠뜨렸다.

  - 입을 닫았던 노무현은 그 입을 열어서 검찰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노건평의 비리로 정말 말 그대로 입을 닥치고 있었던 노무현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박연차의 결정적인 진술을 들으면서 분명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질긴 악연을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들의 수사 진행 상황을 하나하나 다 밝히기 시작한다. 언론은 원하는 만큼 노무현게이트에 관한 수사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기사화할 수 있었고, 관심을 끌 수 있었으며, 검찰은 이러한 언론의 과잉 보도에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만큼 검찰은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박연차의 진술은 정말 강력했다. 검찰은 자신들의 능력을 굳이 발휘하지 않더라도 박연차의 진술만으로 상당 부분 고위공무원들의 비리를 밝혀낼 수 있었다. 심지어 노건평도 잡았다. 그런 그들이 노건호, 연철호, 정상문이라는 세 사람의 진술을 확보했을 때는 정말 이무기가 여의주라도 하나 문 심정은 아니었을까?

 곧바로 가장 처음 발표한 것은 권양숙 여사가 정상문을 통해서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심리적인 충격을 더욱더 키우기 위해서 범죄 금액을 한화로 환산하는 것이 아닌, 굳이 달러로 발표했다. 환율도 높은 2009년 현 상황에서 달러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에 더 크게 와닿았을 것이라는 심리적인 요인도 있었을 것이다. 10억원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뇌물 수수금액 치고는 작은 금액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100만달러는 그렇게 작은 금액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굳이 뇌물액을 '달러'로 표기하는 것을 즐겨 이용한다.

 도덕성만큼은 인정받았던 정권이 100만달러를 받았다는 사실로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검찰은, 숨쉴 틈도 없이 바로 이어서 500만달러라는,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종말을 고하는 비리를 터트린다. 이 두가지는 정말 사람들의 머릿속에 '참여정부도 과거 다른 정부와 다를바 없다'는 각인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사람들은 참여정부에 실망했고, 더이상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의심하게 만들고, 결국 핵심 - 몸통은 노무현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복선도 깔아놓는데 성공했다.

 정말 이 순간이 검찰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악연을 완벽하게 묻을 수 있는 모든것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순간이 변곡점이 되어버렸다. 죽어있을것이라는 검찰의 예상과는 다르게, 제갈공명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노무현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첫번째 노무현이 입을 연 목적은 '범위의 한정'이었다. 분명 돈을 받았다. 그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돈을 받은 주체는 자신이 아니며, 그 액수도 딱 13억 (100만달러 + 3억원) 이라고 자른다.

 이 말을 믿을 리 없는 검찰은 더욱 더 노건호, 연철호를 바짝 조았고 소환해서 강도높은 조사를 계속했다. 13억보다는 50억(500만달러)가 더욱 커 보이고 더 확실한 효과를 볼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시점부터 검찰은 노무현에게 '말리기' 시작했다.

 노무현은 재차, 삼차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돈이며, 설령 받은 돈도 자신이 받은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증거를 요구했다.


이러한 노무현의 움직임에 언론과 검찰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무현의 패와 검찰의 패를 다시한번 살펴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확실하다고 믿어왔던 박연차의 진술이라는 강력한 패가, 어느순간 믿기 힘든 쓰레기 패가 되어버린 사실을 검찰도, 언론도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

  

4. 중달의 패배는 모두 중달이 자초한 것이었다.
  - 검찰은 자신의 패가 자신들의 목을 조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것은 다름아닌 '증거'였다. 지금까지의 모든 수사는 박연차 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해왔다. 그리고 박연차 -> 연철호 -> 노건호라는 자금 흐름까지 캐냈다. 나아가 박연차 -> 정상문 -> 권양숙이라는 확실한 자금수수 라인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루트로 노무현의 강력한 조력자 중 한사람인 강금원 회장을 구속시키는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이 모든 패가 정작 가장 중요한 노무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가 없다. 그것이 노무현의 글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박연차에서 노건호에 이르는 500만 달러도 결국 노건호의 손에 들어갔다고 해서 그 돈을 노무현의 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무리가 있다. 그 아들의 나이가 미성년자도 아니고 40줄에 이르는데다 스탠포트 MBA까지 마친 경영인인지라 그에게 누군가가 투자를 했다고 해서 그것을 노무현에 대한 투자로 해석하기에는 정말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꽃핀다. 노무현 대통령의 직업은 정치인이지만 노건호씨는 경영인/회사원이다. 임기가 끝난 후에 사업가에게 돈을 투자한 것을 정치인에 대한 뇌물로 해석하려면 얼마나 많은 비약이 전제되어야 할까?

 또 권양숙씨가 받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13억의 돈도 정말 '노무현이 몰랐다.'라고만 말해버리면 방안이 없어지게 된다. 비록 대통령 영부인이 비서관을 통해서 돈을 받았다고 해도 대통령이 영부인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이상 몰랐다는 말이 말이 되게 된다. 당연히 입증책임은 검찰한테 있고, 노무현 대통령이 알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권양숙씨의 입으로 노무현이 알고 있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니, 검찰로서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금원 회장에 대한 구속은 그야말로 결정적인 실수였다. 강금원 회장은 구속되기 전까지는 그에 대해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구속되면서부터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보다 투명한 기업인이었으며, 박연차와는 다르게 자신의 소신이 있는 기업인이었다. 그는 현역 정치인과는 거의 인연을 만들지 않았고, 백수 정치인들 (석방이나 사직 이후로 백수생활을 하는 정치인들)의 뒷바라지(전세금을 빌려주거나 보석금을 대신 내주는 정도)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금전거래는 정말 완벽할 정도로 깔끔했으며 (과거 참여정부시절 한차례 곤욕을 치룬 이후로 모든 거래를 법률가의 자문과 회계사의 자문을 거쳤다고 한다.) 검찰도 그로부터 혐의를 찾아내려면 그가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청탁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정도이다.


검찰이 가진 모든 패가 전부 '증거부족'이라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을 이쯤하면 다들 눈치챘을 것이다.


검찰은 위의 네가지 패 중 그 어느것 하나 박연차의 진술 외에는 증거가 없다. 그래서 궁색하게 지금에 이르러서는 '상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가면서 애써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증거제일주의가 원칙인 우리나라의 법정에서, 과연 상식이 어느정도까지 인정될지는 한번 두고 볼 일이다.

 

5. 승리의 여신은 어째서 죽은 자에게 미소를 보냈나.

 정말 아이러니한 사실이 아닐까. 이미 죽어(대통령에서 물러나) 아무런 힘이 없는 전직 대통령에게 승리의 여신은 왜 미소를 보냈을까?


기나긴 검찰과 노무현 사이의 악연이 적어도 이번만큼은 노무현의 승리로 끝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검찰이 정말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찾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현 시점까지 봤을 때에는 그러한 증거가 있을리가 만무하다. 이미 시간이 2년 이상 지났으며, 관련자들의 진술이나 기타 정황상 '노무현이 지시했다 / 노무현이 알았다.' 라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통화를 한것도 아니고, 기록이 남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느 누군가가 도청이라도 하지 않은 이상 / 그리고 그것을 파일로 보관하고 있지 않은 이상 증거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정말 모든 것을 가진 검찰은 이번 사건으로 많은 것을 잃게 될까?

 1) 그간 수사를 미뤄왔던 장지연 리스트에 대한 것
2) 쌀직불금 수령 의혹에 대해서 명쾌하게 밝히지 않은 것
3) 용산참사와 관련된 자료 중 법원이 공개를 명령했는데도 끝끝내 공개하지 않은 자료들
4) 박연차 관련 수사가 유독 노무현 중심으로 편파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5) 뇌종양이 있는 강금원 회장을 굳이 구속시킨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