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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소통

판사 출신 노무현, 검찰에 판정승(?)

▲ 노무현의 미소

5월 1일 새벽 2시 10분... 대검 청사를 나서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사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로부터 질문공세를 받았다. 첫번째 질문은 조사를 받고 나온 소회가 어떠냐는 것. 이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최선을 다해 조사를 받았다'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뒤이어 몇가지 질문이 터져나왔지만 노 전 대통령은 묵묵히 기다리고 있던 버스를 향해 걸어갔고, 버스에 오르기에 앞서 잠시 돌아서서 기자들의 사진촬영에 응했다. 그리고 잠깐의 미소를 지은 뒤 차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봉하마을로 귀가하기 앞서 이렇게 두 차례 미소를 '머금었다.' 짐짓 여유있는 웃음이기도 했고 한편 자신감이 묻어 있는 듯 했다.

▲ 까칠했던 검찰, '신경질적인 만표씨'

반면, 노 전 대통령이 귀가한 뒤 기자들과 브리핑을 가진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소환 조사가 순로롭게 진행이 됐으며,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지만 그다지 밝지않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이 대질신문을 거부한 것에 대해 여러차례 아쉬움을 드러내며 은근히 비난섞인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대질신문이 검사에게는 누구의 주장에 진정성이 있느냐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고  피의자에게는 '상대방의 진술을 탄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 좋은 기회를 노 전 대통령이 거절했으니 유죄를 인정한 것 아니냐는 의미가 섞여 있는 셈이다.
하지만, 홍 기획관은 곧바로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맞딱르여야 했고, 결국엔 짜증을 내고 말했다.
"박연차 회장의 진술이 있고, 보강 증거가 있다면, 굳이 대질신문을 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물음 때문이었다. 이 질문에 홍 기획관은 "수사팀이 다 알아서 합니다"라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 히든카드 빼앗긴 검찰

아마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소환을 앞두고 몇 가지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구속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잇따라 불러 현재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백만달러, 5백만달러, 12억 5천만원)과 노 전 대통령이 연관돼 있음을 자백 받으려 했다. 또 한 가지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백만달러, 조카사위 연 모씨에게 5백만 달러를 준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전화 때문이라고 진술한 박연차 회장과의 대질신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권양숙 여사에 대한 재소환 압박이다.
하지만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자백유도'는 실패였다. 대검 중수부 홍만표 기획관은 정 전 비서관이 조금씩 진술을 바꾸고 있다고 여러차례 밝혔지만 끝내 결정적인 말을 듣지는 못했다.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대질은 노 전 대통령이 거절했다. 박 회장을 조사실까지 데려와 대면을 시켰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문제삼으며 불쾌함을 표시한 노 전 대통령에게 보기좋게 당하고 말았다.
다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막바지에 나온 권양숙 여사에 대한 재소환 카드는 효과가 그나마 있었던 것 같다. 권 여사가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에게 유학자금으로 3억원 정도를 보냈고, 이 돈은 박 회장에게서 받은 백만 달러 가운데 일부로 보인다는 것을 언론에 슬쩍 흘리는 방식으로 조사실에 있는 노 전 대통령의 귀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역시 노련한 문재인 비서실장의 항의만 자아낸채 맥없이 끝나고 말았다. 게다가 이 카드는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이 백만달러와는 상관없고, 권 여사가 주도적 역할을 했음을 입증하는 '역증거'가 될 공산마저 커 보인다.
검찰이 준비했던 세 가지 히든 카드가 모두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 노무현의 자백이 필요했나?

대검 중앙수사부 홍만표 기획관은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세가지 의혹(권양숙 여사가 받은 백만달러, 조카사위 연 모씨가 받은 5백만 달러, 정상문 전 비서관이 빼돌린 12억 5천만원)에 노 전 대통령이 연루돼 있고, 그에 따라 포괄적 뇌물죄 등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백여가지에 달하는"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마치고 나온 노 전 대통령의 표정에서 알 수 있 듯,  검찰은 결정적인 '한방'을 내놓지는 못한 듯 하다. 의심을 살만한 증거들은 있는데, 혐의를 입증할만한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백기 투항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을 압박하거나 박연차 회장의 입을 빌릴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뒤집어 본다면 이 것은 '증거없이 박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를 하고 있다'는 당초의 비난이 옳았다는 추정을 낳게 만든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무리하게 수사를 해야 했을까?

▲ 검찰의 보복?

2003년 3월 검사들은 당시  노  대통령에게 보기 좋게 한방 먹었다. 그것도 '검사와의 대화'라고 이름 지어진 가운데 TV로 온국민이 지켜보는 와중에서 집단적으로 한방 먹었다. '검사스럽다'는 비아냥도 나왔고, 현직 대통령을 "믿을 수 없다"며 대든 검사에게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죠?"라고 했던 노 대통령의 말은 두고두고 유행어가 됐다. 
그일이 있을 뒤, 그 자리에 있었던 검사들은 술자리에서 5년 뒤를 기약했다고 한다. 절치부심 5년동안 납짝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정권이 바뀌었다.  앞선 참여정부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정권이다. 게다가 이번 정권은 앞번 참여정부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오죽 했으면 현 정권 취임 직후 떠돈 말이 'Everything but Roh'(노무현 정책말고 모두 다 좋다)이었을까?
물증은 없지만 이런 '정황'은  노 전 대통령에게 당했던 검사들이 새 정권을 등에 업고 5년만에 복수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 '물증은 없지만 정황은 정말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는' 상황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추정이고, 그런 의심이 든다는 말이다. 정말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이런 '정황증거'를 앞에 두고, 검사들을 다그쳐 '자백'을 받아내고 싶어짐은 왜일까?  

[장용진 기자 /
ohngbear@bbsi.co.kr]

장용진 기자 / 2009-05-01 오후 3:1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