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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소통

검찰, 네 죄를 네가 알렸다 - 독고탁님

검찰, 네 죄를 네가 알렸다

- 무자비한 인격살인(人格殺人)의 죄, 어찌 감당하려 하는가


옛날 어느 메디컬 소설에서 읽었던,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있었을 법한 장면이다.

 

대기실 보호자에게 ‘간단한 수술이니 염려하지 마시라’며 미소를 머금고 수술실로 들어간 신참 외과전문의. 엉뚱한 장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고, 결국 환자가 사망하자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걸음들.


문제는 보호자에게 ‘간단한 수술’이라고 말했는데 사망해 버렸으니 어떻게 그 사실을 알리느냐였고, 당연히 수술전 보호자 동의서(유사시에 대비한)도 받아두지 못한 점, 병원의 과실이 알려질 경우 소송과 만만치 않은 보상비용 그리고 소문으로 인한 치명적 손실이 병원의 고민이었다.


결국 수술실 안에서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열렸다. 원장, 부원장, 의료부장, 외과부장, 간호부장, 원무부장, 법무부장, 수간호사.. 그리고 하나의 시나리오가 작성되었다.


‘염려마시라’던 수술실에 갑자기 의료진과 병원직원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걸 보고 보호자들이 무슨 일이 생긴거냐고 불안해하자 간호부장이 보호자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말한다. 수술자체는 어려운 것이 아닌데, 검사과정에서 예견치 못한 심각한 질환을 발견되어 상황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설명의 대부분은 어려운 전문 의학용어라, 보호자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 다그치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 기다리시면 의사선생님이 별도로 설명해 주실거라면서 수술실로 들어가고, 갑작스런 불안감에 안절부절 못하는 보호자들, 수간호사가 따뜻한 커피를 대접하며 다독인다.


잠시 후 보호자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진료부장이다. 신참 외과의가 경험이 많지 못해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열어놓고 보니 심각한 상태여서 병원의 최고 권위의 의료진들을 투입해야 할 것 같고 아무래도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 같다고 설명한다.


진료부장이 들어가자 이번엔 원무부장이 보호자들에게 다가가 인쇄된 서류와 펜을 내민다. 매우 어려운 수술을 시작해야 하는데 보호자들의 수술동의가 없으면 수술에 들어가지 못하니 급히 서명해 달라고 한다. 보호자는 깨알 같은 내용이 가득 담긴 서류를 읽어볼 겨를도 없이 급히 사인을 한다.


그 동의서 내용에는 이 수술은 동의하에 시술하였음과 수술로 인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더라도 보호자들은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문구가 들어있음은 물론이다. 수술실에선 바이탈사인, EKG, 조작된 검사기록지에 각 파트 서명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마무리된다.  


분주하던 스텝들이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떠나자 수술실엔 의료진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미 사망해 하얀 린넨이 덮여진 환자 곁에 빙 둘러앉은 간호사들은 눈을 내리 깔고, 그중 몇의 눈가엔 이유있는 눈물이 맺혔다. 정적 속 어색한 침묵을 깨고 사고 친 외과의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문다. 수술실에서 담배라니. 그렇게 다섯 시간을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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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뉴스에 임채진 검찰총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단다. 구속 기소냐 불구속 기소냐를 놓고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등, 결심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때맞춰 국정원에서 검찰측에 의견을 제시하는 바람에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우리 검찰이 그렇게 여유자적한 고민을 하고 있을까? 천만에다.


검찰의 시름을 깊게 파는 말 못할 고민은 무엇일까. 그들의 심각한 고민은 기소를 하고나서 ‘과연 공소유지가 가능할지’ 여부일 것이다.


박연차의 말과 정황만으로 무리하게 밀어 붙인 결과, 애당초 목표를 설정해 둔 표적수사에, 귀걸이 코걸이식 편파수사에, 증거입증보다는 상식 밖의 상식론을 앞세운 정황수사에,  나가도 한참 멀리 나가 버렸다.


이렇게 되면 돌아가지도 못한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 쓰러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없이 페달을 밟아야만 하는 두 발 자전거에 올라탄 것처럼, 힘들면 자전거 털고 걸어가도 좋으련만 미욱스럽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비탈길을 기어 오른다.


말 그대로 ‘벼라별것’을 다 까발겼다. 도의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부부지간에도 해선 안될 말이 있고, 친구지간에도 가려야 할 말이 있고, 적과의 싸움이라해도 해서는 안 될 짓이 있는 법이다. 우리 검찰은 상식적인 사람들이 허용할 수 있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많이 넘어버렸다.


그래서 구차하고 부끄럽다. 우리나라 사법기관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 실시간 스포츠 중계하듯 언론에 까발리거나 은근히 뒤로 내용을 흘리고, 언론은 그것을 받아 덧붙이고 비틀어 왜곡한 내용에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지면을 도배한다.


이것은 ‘인격살인’이다. ‘집단적 인격살인’이다. 그 속에서 광기(狂氣)가 서린 살의(殺意)를 본다. 역대 어떤 사건에서 우리 검찰이 이토록 이 잡듯 바닥을 훑은 적이 있는지 기억에 없다. 특검까지 했음에도 엉기성기 수박겉핥기식으로 면죄부를 부여했던 기억이 더 생생하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가장 큰 덕목은 ‘수치지심(羞恥之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 말이다. 배고플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어미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고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부끄러운 줄 아는 것은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이유이다.


지금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을 후려치고 있는 논리를 그대로 미국등 선진국의 정치인에 대입하면 자유로울 정치인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검찰수사 행태를 선진국들이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모두 질겁을 할 것이다. 수 십 년 후원인의 후원조차 포괄의 죄목을 씌우는 기획수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사법문화를 정착하고 정의를 구현하고자 함인가?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말 할 자격이 우리 검찰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떡검’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닉네임을 부여받은지 이미 오래된 우리 검찰은 늘 떡값 구설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임채진 현 검찰총장 역시 내정자시절부터 김용철 변호사가 고백한 삼성떡값 의혹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수사는커녕 진실을 밝힐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용기있게 고백한 사람을 때려잡으려던 우리 검찰이다.


‘BBK는 내가 설립했다’는 동영상이 버젓이 돌아가고 있는데도 ‘BBK와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논리는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 대통령’이라는 속담을 만들어내었다. 그 논리의 연장이 ‘살아있는 권력은 수사하지 않는다’로 진화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참여정부 때 부렸던 호기는 무엇으로 설명할 건가?


불법적 뇌물 성격의 돈이 오고간 사실이 담긴 녹취록이 나와도 불법도청만 문제 삼은 검찰, 범죄를 신고하면 신고된 범죄보다는 신고한 사람에게 현미경을 들이대는 수사기관이라면 이미 그 존립근거 자체를 상실한 것이다. 누가 누구를 신고하는가, 그 대상에 따라 어느 쪽을  수사할지를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권한은 누가 부여한 것인가.


혹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검찰을 ‘사법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아시기 바란다. 삼권분리 원칙에 의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중 사법부는 법원과 대법원이고, 검찰은 행정부 산하 15개 부처 중, 법무부 소속의 일개 청(廳)일 뿐이다.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행정부 산하 18개 청(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검찰청, 병무청, 방위사업청, 경찰청, 소방방재청, 문화재청, 농촌진흥청, 산림청, 중소기업청, 특허청, 식품의약품안전청, 기상청, 해양경찰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만약 국세청에서 비리가 발생하면? 당근 검찰 소환된다. 국세청장 자리만큼 바람 잘날 없는 자리도 드물다. 식약청에서 비리가 발생하면? 마찬가지다. 국정원 압수수색까지 하는 검찰은 현직이든 전직이든 대통령조차 칼날을 들이대면 통제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유독 검찰 내부의 비리는 거의 수사대상이 되지도 않고 소리소문없이 묻혀버린다. 이 나라 민주국가 맞나? 민주공화국 맞나?


삼권분립은 권력을 분점함으로서 민주적 국가통치기반을 수립하고 국가권력의 전횡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행정부 산하 일개 청(廳)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자신의 비리를 감쌀 수 있는 권한은 누가 부여한 것인가? 작금의 검찰을 보며 우리 헌법의 맹점과 그로 인한 위헌적 권한 행사의 폐해를 본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시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할 상설기구로 공직부패수서처를 설치하는 법안(공수처법) 제정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기득권의 반발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 뼈아픈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당시 여론조사에 의하면 찬성하는 국민이 반대에 비해 두 배에 달하는 지지를 보내었다.


그러나, 머지않은 장래에 그리 되리라 믿는다.


그 필요성을 뼈에 사무치도록 절절이 느끼게 해주는 검찰, 그 스스로 자신의 발등을 도끼로 찍고 있으니 말이다.



독고탁



덧글 : 스스로 돈을 받은 사실도, 어떤 특혜를 제공한 사실도 없는 노 대통령이, 가족이 받은 투자나 지원이라도 돈이 건네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한없이 부끄러워하는 ‘수치지심(羞恥之心)’과, 그것이 마치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몰아가며 포괄적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언론과 검찰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대비되는 요즈음입니다.


그러나 법논리(法論理)는 냉정한 것이고, 사법부의 판단은 건전합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검찰총장은 논리의 기반이 되는 근거를 찾지 못해 깊은 수렁에 빠졌습니다. 그 심정이 어떨지 황포돗대님 전유물인 패러디 시조로 읊어봅니다. 


서초골 달 밝은 밤 중수 난간 홀로 서서

클라우드 꼬나물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선가 무죄 선고는 남의 애를 끊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