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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풍경

세살 아들, 고아원에 버리고 재혼한 남자. - 다음의 아드리아님

지난해 여름 지금사는 마을에 땅을 사서 집을 지었습니다.

겨울이 되기전에 이사를 왔지요. 아파트 동네에서 단독 주택 동네로 이사오니까,

불편한 것도 있지만, 집안에 큰나무가 몇구루 있어서인지 마음이 푸근하고 여유롭습니다.

우리집에서 300 여미터 떨어진 곳에는 할머니 한분이 사내아이 세명을 데리고

아주 작은 방에서 살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할머니를 봐서 몰랐는데, 길에 내어놓는 종이 박스를 거두어 가시는 것을

몇번 보고는 자연히 눈여겨 보기 시작 했습니다.

지난 봄, 우리집 앞을 지나 가시기에, 그 할머니 드리려고 내 놓지 않은 박스를 가져 가시라며

집으로 모셨습니다.

따뜻한 우유 한컵과 쵸코파이를 드리고, 좀 앉아서 숨좀 돌리고 가시라고 붙들었습니다.

자연히 이런얘기 저런얘기 하게 되었지요.

손주 둘은 딸의 아이들이고 손주 하나는 아들의 아이라는군요.

아들 딸이 결혼해 살다가 한해 사이에 차례로 이혼하면서 할머니에게 데리고 왔더랍니다.

이혼하면서 며느리나 사위가 자식들을 절대로 맡을 수가 없다해서, 데려 왔다고 하더래요.

그리고는 돈번다고 나가서 가끔 한번씩 와서 몇푼씩 주고 가더랍니다.

3년전에 아들이 어떤 여자를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키는데, 그여자와 살림을 한다고 하더라네요.

그래서 애들 셋을 키우려니 너무 힘드니 니자식은 니가 데리고 살라고 말했데요.

아들이 두말않고 지 자식을 데리고 가기에 참 고맙더랍니다. 

한달이나 지나서, 아들이 그날로 손주를 고아원에 맡겼다는 것을 알았다네요.

그 사실을 알고 가슴이 무너져서, 아들을 다구쳐 고아원을 찾아 갔더니 손주가 울기만하고

정신이 없는 아이 같더랍니다. 굶어죽어도 같이 죽자는 마음으로 데리고 왔다네요.

다행히 딸은, 지 자식들 고아원에 보낼 생각 안하고, 할머니에게 미안 하다는 말만 한답니다.

그후 할머니의 딸도, 재혼을 했는데 사위 될놈이 와서 애들과 같이 살 수 없다고 하더라네요.

그 딸도 그렇지, 남자가 그런다고 자식들을 떼어놓고, 결혼을 하고 싶은지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그들대로 사정이야 있겠지만, 나는 지금도 할머니의 아들과 딸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나마 딸은 몇푼씩 돈을 보내 주는데, 아들은 지금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네요.


동사무소에서 극빈자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을 받으려고 신청했더니, 아들도있고 딸도 있으면서

둘다 승용차가 있어서 안된다고 하더랍니다.

대신, 가끔 쌀이나 라면은 나온답니다. 그래서 나이 70인 할머니께서 동네를 다니며

박스나 빈병을 주워 판 돈으로 근근히 산다고 하더군요.

지금 사는 집은 집주인 할아버지가 월세 5만원만 받아, 고맙게 그냥  살고, 

아이들 옷은 이웃에서  버린 것들을 주워서 입힌답니다.

다행히 할머니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신도들로부터 여러가지 일용품을 얻어 공급해 준다는군요.

간다는 할머니를 붙잡고, 초코파이 두갑하고 우리 아이들이 입던 옷가지들을 찾아서 드렸습니다.


작년에 유류 환급금인지 차 있는 사람들에게 몇십만원씩 환급해준 일이 있지요.

정부에서 소비를 진작시킨다고 그런짓?을 했습니다.

나도 생각치 않은 돈이 생겨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헛돈을 쓰는게 아닌데..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요긴하게 쓴 사람도 있겠지만 그돈이 소비로 가지않고 거의 은행 잔고로 갔을

것입니다.

소비를 진작시키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도  돈이 없어서 못 사는 사람들에게 가야지,

낭비성 돈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가서는 안되지요. 이 문제는 물론 경제적인 문제이지만,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아줌마의 한사람으로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년의 유류 환급금으로 지급했다는 2조원을 우리 이웃의 할머니와

같은 극빈층에 1년이나 2년동안 나누어, 매달 지급했다면 100%소비로 연결 됐으리라 생각 합니다.


다시 할머니 얘기로 돌아와서, 언젠가 글에 제가 오지랍이 넓다고 썼지요.

이번 할머니의 어려운 형편도, 오지랍이 넓어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런 경우는 나라에서 구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음날, 동사무소에 가서 복지과 담당 공무원에게 사정얘기를 했습니다.

담당 공무원 말이 우선 할머니의 아들 딸이 어머니를 부양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 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네요, 아무리 썩은 차라도 승용차가 있으면, 어머니를 부양 할 수 있다고 본 답니다.

규정이 그렇다네요. 딸에게 연락하고, 아들을 경찰 도움으로 찾아내서, 내용을 설명 했습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동 직원이 요구하는 조건들을 무려 한달만에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말쯤에 서류를 제출 했지요.

동사무소에 제출할 서류중에는 임대 계약서도 있어야 합니다. 집주인 할아버지께 설명을 했더니

남도 이렇게 할머니를 돕는데 내가 어찌 집세를 받느냐며, 한달에 5만원씩 받던 집세를 안 받겠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연탄 창고로 사용하던 방이라 집세 받기가 미안 했다네요.

서류를 만드는 과정에서, 방세 면제와 같이, 생각못한 소득이 몇가지 더 있었습니다.

그일 때문에 할머니집에 몇번 갔는데 아이들이 생기가 없어요. 사내아이 셋이면 정신없이 장난치고

깔깔 거릴텐데, 내가 가지고간 초코파이만 먹으며 조용하게 앉아 있어요. 몇번을 갈때마다, 나 따라온

우리 아들이 더 시끄러워요. 아이들이 그렇게 생기없는 모습이 참 안됐고 가슴 아팠습니다.


드디어 지난 20 일 첫 지원금 55만원이 할머니 통장에 입금 됐습니다. 은행에서 통장 확인 하자마자,

할머니가 입금 됐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어요. 이돈 써도 되느냐고 하길래, 이제 매달

그만큼 나오니까, 할머니 하고 싶은대로 써도 된다고 말했어요. 그날로 몽땅 찾아서 그동안 밀려있던

외상값을 갚았답니다. 그리고는 어젯밤, 할머니가 고맙다고 쵸코파이 한갑을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왔는데 전과 달리 아이들이 무척 밝아 졌더군요.

어린 아이들이지만, 나라에서 매달 돈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좋아 하더랍니다.

더구나 일주일 단위로, 큰아이는 5천원 작은 아이들은 2,500원씩 용돈을 준다는 말에, 용돈이란 말이

남들의 일이지 우리에게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했던 큰아이가, 흥분해서 며칠을 계획을 세우더래요.

"00 이는 용돈 어디에 쓸거야?"하고 물으니,"3천원은 저금하고 2천원은 먹고싶은거 사먹을 거예요"

하고 씩씩하게 대답하네요. 그래도 바르게 자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돈 나왔다는 사실보다, 아이들이 우리아들과 밝은 모습으로 뛰어 노는게 더 좋았습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고 둘은(같은 나이) 내년에 입학 합니다.

어차피 우리아들이 다니는 학교로 갈것입니다. 성형해서 예뻐진 민선생이 근무하는 초등학교지요.

지금까지는 민선생에게, 단 한번도 무엇인가를 부탁하지 않았는데, 이 아이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만은 거리낌 없이 하려고 합니다.


남편이, 착한 일을 한 아이를 보는듯한 눈길로 나를 보더군요

우쭐 했습니다.ㅎㅎㅎ



출처 : 다음 아고라 이야기 <아드리아>님